잘 나가던 증권사를 그만두고 택한 두 번째 길. 어려운 결정이었고 간절했기에 뒤돌아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남보다 늦은 출발. 하지만 어느 새 앞서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 참 잘했다!
4년 전 어느 날, 그녀는 세아해암학술장학재단에서 처음 선발하는 박사 장학생 면접을 보고 있었다.
서른 중반에 들어선 만학도. 게다가 공학이 아닌 경영학 전공자였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긴 했다.
“저는 경영학의 관점에서 혁신을 연구합니다. 기업의 변화를 이해하고 공학과 경영학의 조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인재라 생각합니다.
장학금은 더 좋은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비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많고 이력도 특이한 그녀에게 면접 심사관으로 참석한 사무국장이 깐깐하게 물었다.
10년 가까이 다니던 좋은 직장을 왜 그만 뒀는지, 왜 이렇게나 많은 논문을 썼는지…. 그렇게 하나하나 따져 묻더니 마지막에 이르러 말했다.
“이은미 씨는 절대로 꿈이 흔들릴 것 같지 않네요. 힘내십시오.”
그녀는 박사 장학생으로 선발돼 2년간 장학금 지원을 받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따뜻하고, 꿈을 향해 나아간다면 언제든 기회가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그날 사무국장으로부터 건네 받은 응원과 같은 말은 길고 어려운 박사 과정 동안 그녀의 어깨를 자주 토닥여주었다.
북경대학교 국제관계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여의도 증권사에서 딜링룸이나 IB Banker로 일할 때도 그녀는 즐거웠다.
국내에는 중국 전문가가 거의 없던 터라 방송 출연이나 강연 기회도 많았는데, 나름 보람은 있었지만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 컸다.
이미 늦었다고, 미래가 불안하다고 걱정하는 말들 속에서도 그녀는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만 15편. 그리 열심히 했던 건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아야 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저 연구가 몹시 즐거웠던 이유가 크다. 10년 가까운 실무 경험에 학문적 깊이와 연구 경험까지 더해져서 그녀는 이전보다 더 능력 있는 전문가가 되었다.
국제경영, 금융, 혁신,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등 중국 다국적 기업들의 해외 진출과 경영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면서 ‘찐 중국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녀는 현재 세종대학교 경영경제대학 조교수로서 특히 경영대학원에서는 영어박사과정 및 중국이중언어석사과정 주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영어와 중국어 실력은 물론 논문 게재 실적까지 뛰어난 그녀의 강점을 100% 발현할 수 있는 직업을 만난 셈이다.
3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중국인. 가능성 있는 인재를 받아 우수한 연구자로 양성해 이들이 본토로 돌아가 원하는 진로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연구자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가장 중요한 건 논문의 질과 게재 실적.
특히 박사과정 학생들이 좋은 연구 논문을 작성해 해외 저널에 게재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기업의 발전이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는 사회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자부심을 갖고 기업의 여러 분야를 연구하는 경영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처럼 늦게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쉽지 않은 길일 테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언제든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고, 그녀는 매일 증명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