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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이야기

미래의 꿈 실현을 위한 마중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세아해암학술장학재단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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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후기

운명일지 모를 길 위에서
최지원의 Standing up

건강하던 엄마는 어느 날 병을 얻었고 이내 돌아가셨다. 무정한 세상이었다.
오늘 그녀는 세상이 이끌어온 길 위에 운명처럼 서있다. 응원하는 벗들과 함께, 자기 자비를 베풀면서.



엄마의 죽음

강원도 고성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살았던 그녀는 곧잘 우울해져 열여덟 살부터 병원에 다녔다. 나중에 알았는데 조울증이라 불리는 양극성장애 2형을 앓고 있었다.
사랑하는 엄마는 그녀가 대학교 1학년을 마칠 때쯤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날, 서울의 큰 병원에 있던 엄마를 지역 의료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거부를 당했다 인공호흡기도 제대로 없는 작은 병원을 거쳐, 별 도리 없이 다시 그 의료원 문을 열었을 때 의사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보았다. 의사를 보며 원망보다 먼저 떠오른 건 의문이었다.
‘무엇이 저 사람을 저런 의사로 만들었을까.’
단순히 개인 인성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의심하게 되었다.
엄마를 떠나보낸 그날을 떠올리며 그녀는 다짐했다. 시스템을 바꾸려면 정책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래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마침 그녀는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에 재학 중이었다. 타 학과로 전과할 계획을 갖고 입학한 곳이었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한 사람의 죽음은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 말고도 많은 현실적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나 큰 건 돈 문제였다. 그녀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불안정했다. 힘든 일이 있었다는 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순간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어떤 때는 말을 막 쏟아내다가도 멀쩡한 척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동시에 외로움에 허덕이면서 누군가 자신을 챙겨주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의 죽음 이후 가족들은 각자 상처가 깊어 자기 자신을 돌보기에도 바빴다.
도움의 손을 내밀어준 건 세아해암학술장학재단이었다. 의지할 곳 없던 그녀에게 지금 잘하고 있다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격려해주는 단단한 존재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녀는 학업에 집중하면서 특히 사회역학에 관심을 두었다. 사회경제적 환경이 어떻게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가! 자신의 경험을 이론에 대어보며 공부에 매진했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자신과의 화해

그녀는 현재 사단법인 프리메드 대표로 활동하면서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활동해온 프리메드는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비영리법인(보건의료)으로 의료사업과 캠페인을 수행하고 있다. 전에는 의료사각지대의 빈틈을 메우는 데 집중했다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리브랜딩을 시작해 2022년 ‘차별 없이 건강할 권리를 외치다’라는 새 슬로건을 선정해 시대에 맞는 방향성을 정립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프리메드 활동의 동력으로 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경험했으므로 할 수 있는 말들이 있고, 그것이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그리고 더는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는다.

“전에는 뭔가 퍼포먼스를 내지 못하면 조울증 환자라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무서웠어요. 어려움이 닥치면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자기 처벌적 의식이 강했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깨달았어요. 내가 잘하거나 혹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맞물려 돌아가니까요.”

내 잘못이 아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다 문득 떠올린 이 깨달음이 스스로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건넸다. 담당의사가 ‘걸어 다니는 포트폴리오’라 할 만큼 그녀는 건강해졌다. 그리고 원하는 미래를 위해 내년쯤 유학을 떠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녀는 믿는다. 세상의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언젠간 우리는 모두 그곳에 닿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