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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이야기

미래의 꿈 실현을 위한 마중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세아해암학술장학재단의 이야기입니다.

재단소개 이미지

나눔후기

청년에서 장년으로
임유담의 Dramatic Moments

인생의 항로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드라마틱한 순간을 누구나 살면서 몇 번쯤 경험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임유담(개명 전 이름 임정규)의 36년 인생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SCENE 1. “대구!”

고등학교 1학년. 부모님의 재혼과 연이은 사업 실패로 고향인 대구에 계속 살 수 없게 된 그는 홀로 안산 친척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MBTI로 따지면 ‘극 I’인 그가 처음으로 남녀공학을 다니게 된 것도 그때였다.
친척집에 얹혀사는 내성적인 전학생? 그랬다면 뻔한 스토리가 될 뻔했겠지만 그는 달랐다. 이참에 자신의 성격을 확 바꿔보자 마음먹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그의 리듬감 넘치는 대구 사투리가 안산 아이들 귀에 착착 감겼다.
새 학교 아이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대구!”
새 친구들의 지지에 힘입어 그는 얼마 안 가 학생회장으로 등극했다.

SCENE 2.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인가

대학에 입학했지만 집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일찍 경험한 탓에 학자금 대출은 꿈도 꾸지 말자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했다. MT고 술자리고 죄다 빠지고 대학생활을 오직 수업과 아르바이트로만 채웠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야간에 일하고 수업시간에는 졸고……. 그런데 정작 교수는 열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수백만 원씩 내며 이 고생을 하는가.’
2학년 2학기 무렵, 그는 벽 앞에 서있음을 느꼈다. 자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SCENE 3. 하늘이 날 버리지 않았구나

세아해암학술장학재단의 장학생 모집 마지막 날. 그는 이런 장학생 모집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가 마감일이 되어서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해 밤 10시 재단 사무실 앞에 도착한 그. 하지만 직원들은 이미 모두 퇴근했고 문 앞에는 셔터가 무겁게 내려져 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서류를 셔터 아래 작은 틈으로 간신히 밀어 넣었다. 아직 ‘오늘’은 끝나지 않았으므로…….
얼마 뒤, 그는 세아해암학술장학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남은 2년간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표현 그대로 ‘평생의 은인이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장학금이었다. 그날 셔터 아래로 밀어 넣지 않았다면 아마도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느덧 서른여섯, 임유담

하고 싶은 것도, 재능도 많았던 그는 한때 영화 일을 꿈꾸다가 부동산 컨설팅 기업과 스타트업 등을 거쳐 지금은 빅데이터 컨설팅 기업인 골든플래닛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데이터 분석 툴인 구글 애널리틱스(GA) 세일즈와 고객 관리 업무 등을 주로 맡고 있으며, 경영에도 관심이 있어서 주말을 이용해 빅데이터 관련 MBA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지금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열심히 한 만큼 회사도 성장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최고의 복지란 일자리를 늘려 한 명이라도 더 먹고 살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회사 규모를 더 키워 채용을 늘리는 것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세아로부터 받은 장학금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보다 더 나은 방식이겠지요. 세아에서 원하시는 방향도 그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도 그는 세아타워 앞을 지날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과거의 추억이자 자랑, 힘들 때 동기부여가 되어주는 친정 같은 곳. 그에게 세아는 그런 이름이다.